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樹-천그루의 나무전
이번 전시는 전라도의 산천초목을 소소하지만 담대하게 수묵 담채화(水墨 淡彩畵) 로 그려내고 있는 오창록 작가의 전시이다. 먹으로 농담 효과를 살린 수묵화에 엷은 채색을 더한 그림을 수묵 담채화라고 하는데 채색보다 수묵 위주로 그려지는 것이 특징이다. 채색을 얼마나 많이 사용하는지에 따라서 수묵화와 채색화 중간쯤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작가의 작품에서는 보통 한국화를 바라볼 때와는 다른 세련미와 공간을 압도하는 능력이 두드러진다. 담채화는 원?래 시각 예술에서 펜 등의 도구로 표시를 하고 묽게 갠 먹이나 수채를 그 위에 한 겹 칠한 그림을 말하는데, 유화가 아닌 물로 이용하는 물감의 그림에 속하므로 수묵화, 수묵 담채화 그리고 채색화는 수채화 개념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정자에서 길을 묻다’, ‘송강정’, ‘만귀정’, ‘풍암정’ ‘드들강’ 등 작품의 제목을 보고 있노라면 그가 그림을 그리며 바라보았을 시선과 애향이 느껴진다. 많은 작가들이 그렇겠지만 특히 오창록 작가가 작업을 진행하는 방식에는 성스러운 무엇이 있다. 늘 지니고 다니는 화구,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으로 나무를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그릴 대상을 눈앞에 두고 즉석에서 그려내는 과정에서의 진지함 이런 모든 것들은 작가가 그려내는 작품 속에 그대로 스며들어 생동감을 준다. 그렇게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오창록 작가의 작품을 진지하게 바라보게 된 것 에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그가 그려내는 나무들에서 생명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무의 형상보다는 나무 주변의 바람이, 하늘이, 세월이 그리고 사람들이 지나간 흔적이 느껴지기도 하고 그런 대상들을 바라보고 있는 작가의 존재감까지도 느껴졌기 때문이다. 작가와는 죽마고우(竹馬故友)와 같은 친분을 가진 학예연구사이자 역사학박사 신훈의 글에는 ‘그의 나무에서 바람 소리가 들려온다. 어쩌면 쓸쓸할지도 모르는 기다림 또한 있다. 그는 바람을 맞으며 기다려 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곳에 있어 준다(중략) 나무가 되어 느끼고 싶은 그의 바람 소리는 구지 중국 남송대 궁정 화원들이 느꼈던 소나무와 바람처럼 음울하지도 서정적인 분위기도 아니다. 그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도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이 있고 싶은 곳에 있고 스치고 가고 싶다면 그렇게 한다(중략) 오창록 작가가 그림을 통해서 전해주고 싶은 자연의 향기와 바람을 느끼며 잠시 마음을 비우고 바쁜 삶 속에서 하나의 쉼표를 찍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나는 가끔 오창록 작가에게 이런 말을 한다. “선생님 머릿속에는 천 그루도 넘는 살아있는 나무가 있는 것 같아요.”
2018 DAIN Art Gallery초대전글발췌 최정미(독립큐레이터)
樹 : 기다림
문화재학 박사 신 훈
그의 나무에서 바람 소리가 들려온다.
어쩌면 쓸쓸할지도 모르는 기다림 또한 있다.
그는 바람을 맞으며 기다려 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곳에 있어 준다.
항상 그렇듯 찾는 사람의 반가움도, 그저 그렇게 서있던 그들도 서로에 대해 묻지 않는다.
이번 전시에 출품 되는 그의 작품은 채우는 것보다 비움을 말한다.
극히 절제된 포치(布置)안에서 그는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흔히 말하는 여백이 아닌 비워주고 싶은 마음이다.
여백이란 것이 비움이 아니라 채우기 위함인 것을 그는 알고 있다.
그래서 항상 어렵다.
그렇게 그의 마음을 나무로 혹은 바람으로 담아 채운다.
바람은 형체가 없다. 그러나 흔들리는 나뭇잎에도, 물결 위에도 존재한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음에도 존재한다.
오창록, 그는 바라는 것 없이 기다린다.
바람이 되기도 나무가 되기도 하는…
나무가 되어 느끼고 싶은 그의 바람 소리는 구지 중국 남송대 궁정 화원들이
느꼈던 소나무의 바람처럼 음울하지도 서정적인 분위기도 아니다.
그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도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이 있고 싶은 곳에 있고 스치고 가고 싶다면 그렇게 한다.
채우지 못함과 비워둠은 다르다. 그렇게 비워둔다. 기다림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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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성모 무염시태 대축일
작은형제회 이요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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